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판타지소설] 주문을 도와주는 남자 <5화. 그래도 널 좋아해.>

[완결] 작품/소설

by 이웃집 낙서장 2020. 2. 3. 02:00

본문

작가: 미지`


  "정말... 내가 한심해 죽겠어! J"

  "..... 개의 모습으로 사람 말하니깐 이상하네."

  "그게 지금 중요해? 아무튼 난 그 여자가 밉다 못해 싫어!"

  아네모네의 전생 모습은 다름 아닌 '진돗개'의 모습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진돗개 믹스' 이었다.부모 중에 누가 진돗개였는지 몰라도 아네모네의 모습은 듬직하면서도 사랑스러웠다. J는 아네모네의 전생 모습을 본 뒤 속마음으로 말한 걸 입 밖으로 꺼내버렸다. 아네모네는 J의 말에 한숨을 쉬며 다시 인간 남자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 이미 네 손으로 그 여자를 살려줬어 아네모네."

  "정확히 말하면 그 여자가 다시 살고 싶어 했어. 난 그저 그 여자의 주문을 받아준 거뿐이야."

  ".... 그 여자한테 복수하고 싶은 거야? 그러면 넌 진짜..."

  "그 여자가 내 공간에 올 때... 아니, 주문을 하기 전에 알았다면 복수했겠지."

  "......."

  "내가 아까 한심해 죽겠다고 했잖아 J? 그게 무슨 의미로 얘기한 줄 알아?"

  ".... 글쎄."

  아네모네는 의자에 앉아 차를 따르며 말을 이어서 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얘기한 거야. 한 가지 의미는 생전의 기억이 지워졌는데도 난 그 여자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착각... 아니, 진짜 사랑을 했었어. 생전에도 이번에도."

  "......"

  아네모네는 J의 표정을 보곤 '넌 모를 거야 아마~.'라고 덧붙여서 말했다.

  "....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스토커는 단순한 오해라고 보기엔 그래도 네 생전 기억이 돌아와서 그랬다고 하면 윗분은 물론이고 다른 도우미들도 이해할 거야."

  "..... J."

  "내가 기꺼이 나설 수 있어 아네모네."

  "J."

  "......"

  아네모네는 J의 표정을 보곤 쓴웃음을 지으며 J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가볍게 잡았다.

  "J 네가 그런 표정 지을 줄 몰랐는데.... 이거 영광인걸?"

  ".... 남 얘기하듯이 하지 마! 아네모네. 이 문제는 너의 환생이 걸린 문제야. 넌... 넌."

  "그래. 난 도우미 일을 하면서 항상 같은 생각을 했지. 환생하고 싶다고 말이야.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 사실 나 그 여자를 죽이려 했었어."

  아네모네의 충격적인 고백에 J는 아네모네 손을 어깨에서 치우며 아네모네를 쳐다봤다.

 

  "내가 죽은 이유는 '유기'였거든. 며칠인지도 기억 안 날 정도로 유기된 자리에서 그 여자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배고픈 건 참아져도 외로움은 못 참겠더라."

  아네모네는 덤덤하지만 슬픈 목소리로 자신의 생전 과거 이야기들을 이어서 얘기했다.

  "난 처음부터 유기, 버림받은 강아지였어. 물론 날 버린 건 인간이었지. 그리고 그런 날 발견하고 돌봐준 게 바로 그 여자였어. 내가 믹스라서 입양이 어려웠는데도 불구하고 그 여잔 책임감과 사랑으로 날 아껴주며 계속 돌봐줬어."

  아네모네는 눈을 뜨기 전부터 부모와 헤어져야 했었다. 작은 박스에 얇은 담요 한 장이 어린 아네모네를 보호해주는 게 전부였다.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공간에 버려져 금방 발견될 줄 알았지만, 아네모네는 혼자서 일주일이라는 아주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미세한 숨결이 잠잠 해질 때쯤 한 여자가 발견에 자기 품속으로 아네모네를 조심스레 안고 동물 병원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따뜻한 온기에 아네모네는 죽기 전에 좀 더 느끼고 싶어 마지막 힘을 다해 아네모네가 울 수 있는 만큼 울었다.

  아네모네가 다시 눈을 떴을 땐 깜깜하고 눅눅한 박스 안이 아니었다. 아직 온몸에 힘도 없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아네모네는 본능적으로 지금 있는 공간이 전보다 낫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느껴 본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바로 자기 눈앞에 있다는 걸 알았다. 아네모네 몇 주 병원에서 죽을 고비도 몇 번 있었지만 따뜻한 온기는 아네모네가 그럴 때마다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따뜻한 온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날이 왔다.

  "그 여자랑 같이 지낸 지 한 삼 년 될 때인가... 하루 이틀 삼일... 그것보다 더 오래 날 집안에 방치를 하더라고. 처음에는 가끔 그럴 때도 있어서 이번에도 그런가 싶었지.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어."

  아네모네는 점점 줄어드는 사료와 밑바닥이 보이는 물보다 자신의 따뜻한 온기가 집에 더는 없다는 것에 충격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린 그녀가 집에 들어오면 축 처진 아네모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녀를 향해 반갑게 달려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아네모네가 반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마도... 내가 죽기만을 기다린 거 같아. 그런데 내가 안 죽고 자신을 계속 반기니깐.... 날 유기한 거지. 좀 웃기지 않아? 자신이 유기된 나를 발견했으면서 자신이 날 또 유기하다니."

  "...... 몰라도 사정이라는 게 있었겠지."

  "그래. 사정.... 사정은 많았지. 아까 내 모습 봐서 알겠지만 난 몸집이 꽤 커. 원래대로 라면 난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살아야 했어. 그리고 목소리도 커서 그 여자가 날 돌보면서 다른 사람들 눈치도 참 많이 봤었지."

  ".... 네 탓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야 난. 난 그저"

  "알아. J 네가 무슨 말 하는지. 그래서 난.... 그 여자가 지독하고 외롭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죽기 직전까지 내가 그랬으니깐. 내가 느낀 고통 모두 그 여자가... 별희가 느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러면 내가 또 아플까 봐.... 내가 아직도 별희를 좋아하니깐 그러지 못했어"

  아네모네는 그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J는 조용히 아네모네를 안아줬다. 마치 별희가 처음으로 아네모네를 따뜻이 안아줬던 것처럼.

  '넌 어쩔 수 없이 날 버렸지만.... 그래도 난 널 좋아해. 네가 준 사랑만큼 더더욱.'

 

  "......"

  "..... J"

  "..... 어. 왔어?"

  "..... 아네모네 생각해?"

  ".... 뭐 그냥저냥."

  오늘은 참새 도우미는 조심스럽게 J를 불렸다. J는 참새 도우미의 목소리에 생각보다 빨리 반응을 했다.

  "..... 그럼 나 가볼게."

  "왜? 더 있다가 가도 되는데."

  "......."

  "..... 아. 미안. 내 공간이 언제 이렇게 깜깜했지."

  J는 참새 도우미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수차례 말하며 공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참새 도우미는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지금 말해도 J는 얼빠져 있을 테니깐. 사교 모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네모네의 '벌'이 결정 났다. 그 벌은 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돌이킬 수 없는... '소멸'. J는 우주를 찾아가 따졌지만 이미 아네모네도 받아들인 벌이었다.

 

  '별희... 그러니깐 내 생전 주인 벌써 할머니가 다 되었더라. 그렇다고 아직 죽을 정도로 늙은 건 아니고! 저번에 여기로 온 이유는 달리는 차에 달려든 강아지를 구하려고 하다가 사고가 나서야. 그땐 내 기억이 돌아왔다고 생각 못 했을 때니깐 왜 그랬냐고 물어봤었거든? 별희가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J?"

  '아주 오래전에 자신이 버린 강아지랑 닮아서 그랬대. 이 말 하고 자기도 어이가 없는지 웃더라. 그리고 그래서 벌을 받아보네 하고 말하면서 나를 쳐다보는데.... 늙었어도 여전히 따뜻하더라.'

  '그동안 고마웠어 J. 그리고 미안해. 난 비록 소멸하지만... 그래도 난 나한테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어! 만약... 나한테도 기회가 생기면... 그땐 제대로 평생 친구로 지내자! 너무 낯간지럽나? 하하'

  "..... 멍청한 아네모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