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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소설] 주문을 도와주는 남자 <프롤로그>

[완결] 작품/소설

by 이웃집 낙서장 2020. 1. 25.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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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지


  "........"

  "......."

  "...... 저."

  "주문하시겠습니까?"

  "​아, 그건 아닌데... 뭘 주문해야 하고 일단 여기가 어딘지 궁금해서요."

  얼핏 보면 일반 카페랑 다르지 않은 내부 안. 조명은 고급 와인바 같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신경 써야 하는 건 바로 내가 여기에 어떻게 왔는 지다. 난 분명 조금 전까지 병원 침대에 누워 두세 명 되는 의료진들과 가족들 사이에서 숨을 헐떡이며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거 꿈인가? 아니면 그게 꿈?... 어떤 게 꿈인지는 몰라도 너무나 생생해... 병원에 있었던 것도.... 지금 여기에 있는 것도.'

  "당연하죠."

  "..... 네?"

  "생생한 게 당연하다고요. 당신은...."

  "......."

  내 앞에 있던 메뉴판을 펼쳐 보이는... 카페 사장님? 아니, 웨이터? 아무튼 이곳의 주인인 거 같은 진한 회색 머리카락의 남자.

  "당신은 병원에서 생(生)을 마감하기 전에 바로 여기로 온 거니깐요."

  "..... 뭐라고요? 내가... 그러니깐 내가 죽어서 저승에라도 왔다는 거예요 지금?"

  "여기는 저승은 아니지만 당신은 지금 죽음의 경계 '선'에 있는 건 맞아요. 자, 그럼 이제 그만 주문해주시겠습니까? 나도 할 일이 많아서요."

  남잔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나를 쳐다봤다. 남자의 말에 대꾸할 말을 찾고 있었는데 남자의 표정이 너무 지루해 보여서 헛웃음만 날뿐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메뉴판을 보고 말하기로 결정했다.

  "...... 이게 뭐예요?"

  "하아-. 보면 몰라요? 딱 보면 알잖아요. 당신만을 위한 '메뉴'라는 걸. 이제 진짜 시간이 없어요. 얼른 주문하세요."

  내 질문에 남잔 짜증 난 목소리로 말하며 자꾸 재촉을 해댔다. 남자의 태도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남자를 째려보며 쏘아댔다.

  "제정신이 아닌 이상 이건 도저히.... 장난하는 거라면 이쯤에서 그만둬요. 안 그러면 나도 더 이상 못 참아요! 알겠어요?"

  "아직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를 수도 있다는 건 이해하겠는데 나도 할 일이 태산이라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뭐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아... 진짜 이런 시스템은 왜 만든 건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니깐."

  남자는 혼잣말을 하더니 문 밖으로 나가려는 날 막아섰다.

  "안 비켜요? 경찰 부를 거예요! 진짜!"

  "경찰.... 형사들도 여기에 많이 왔다 갔죠."

  "뭐래. 비켜!"

  "후회할 텐데."

  "후회는 네가 할 거니깐 좋은 말할 때 비켜라!"

  "...... 뭐. 경험을 해봐서 나쁠 건 없지. 자, 어디 마음대로 해보세요."

  "그래. 너 여기에서 딱 기다려! 내가 경찰서 가서 신고하고 다시 올 테니깐!"

  남잔 내 말에 비웃는 듯이 피식 거리며 어디 마음대로 해보라는 식으로 내 앞에서 비켰다. 난 육두문자를 줄줄이 내뱉으며 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열었다.

  "..... 이게 뭐야."

  "........"

  "...... 어.... 어?!"

  "깨달았으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시 제자리에 앉아서 메뉴나 주문하는 건 어때요?"

  이곳 공간에서 있는 문이라곤 이거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문에서 나가도 내가 서 있는 자리... 즉, 제자리 그 상태였다. 내가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문에서 나가는 걸 한심하게 지켜본 남잔 의자를 빼며 말했다.

  "..... 이건 꿈이야. 현실 일수가 없잖아? 자. 꿈에서 깨는 거야. 이건 악몽 그 자체이니깐 이렇게 때리면... 아! 아파!... 아파? 왜 아파...?"

  "풋."

  ".... 풋? 풋? 당신 지금 비웃었지! 지금 이게 웃겨? 난 진지하다고!"

  "그러니깐 내가 얼른 주문이나 하라고 했잖아요. 이제 진짜 몇 분 안 남았어요. 당신이 죽음의 경계'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다시 올수 없는 로또 같은 행운이라고요. 그 행운을 놓치면 당신은 선택권 자체가 없어요."

  남자는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한 손을 내밀었다. 아마 자기 손을 잡으려는 뜻인 거 같았다. 나는 남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한참을 째려보다가 이 상황이 꿈이건 아니건 일단 여기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조심스럽게 남자의 손을 건들었다. 남잔 그제야 싱긋 웃으면서 내 손을 잡고 테이블로 갔다.

  "..... 그래서. 내가 이... 메뉴 같지도 않는 메뉴 중에 한 가지만 골라야 여기에서 나갈 수 있다는 거죠?"

  "네. 드디어 이해를 했네요. 여기에 온 사람들 중에 나름 빠른 편에 속해요 당신."

  "뭐라고 하는 건지. 아무튼.... 내가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말이 메뉴이지 사실 이건 당신이 원하는 걸 선택하는 거예요. 음. 마치... 심리테스트처럼?"

  "심리테스트? 그러면 질문이 있어야 되는데 이건...."

  "'이대로 죽겠습니까, 아니면 다시 살겠습니까'. 당신의 메뉴의 질문은 이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 '충동적인 자해'로 인해 죽음의 경계'선'에 서 있는 거니깐요."

  "........"

  메뉴판에 서 있는 건 딱 두 개였다.

  1. 고통이 계속되어도 난 살고 싶어 음료.

  2. 아니. 고통은 더 이상 싫어. 그래서 난 죽고 싶어 음료.

  "........"

  "주문... 하시겠습니까?"

  ".... 네."

  "어떤 걸 드릴까요?"

  ".... 1번... 첫 번째 음료로 주세요.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어요."

  "네. 바로 1번 고통이 계속되어도 난 살고 싶어 음료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 네. 그런데 당신은 정체가... 저승사자? 아니면...."

  "으음. 글쎄요. 굳이 말하자면...."

  "........"

  "'주문을 도와주는 남자'랄까요? 자.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이 음료수를 쭉 들이키면 당신이 울 정도로 보고 싶어 하는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을 '주문을 도와주는 남자'라고 말하는 진한 회색 머리카락의 남자. 남자가 싱긋 웃으며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첫 번째 메뉴의 음료수 색깔은 투명했다.

  "당신이 또 '날'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회가 있다면 주어진 시간까지 잘 살아요."

  "..... 고마워요"

  "전 당신의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합니다. 그럼 잘 가요 오늘의 첫 번째 손님."

  남자의 말의 끝으로 난 투명한 음료수를 한 번에 쭉 들이마셨다.

  "....... 어.... 엄마? 아... 아빠?"

  "..... 우... 우리 딸 괜찮니? 엄마 아빠 알아보겠어?"

  "우리 딸 깨어났어요 선생님!"

  "으... 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미안해 엄마 아빠"

  "미안한 줄 알면 다신...! 그러지 마. 너 없으면 네 엄마 아빠도.... 없는 거니깐. 아무튼.... 깨어나 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우리 예쁜 딸."

  "...... 응. 그럴게. 나도... 고마워요. 보고... 싶었어요 엄마, 아빠."

  오늘의 첫 번째 주문 손님. '뇌종양으로 고통받은 환자의 자해' 주문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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