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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 그 여자 <4화>

[완결] 작품/소설

by 이웃집 낙서장 2020. 2. 16.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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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로부터 입수된 Foundry Co님의 이미지 입니다.

작가: kimleecalli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im.lee.calli/?hl=ko


  조금 전까지 작성 중이었던 듯한 메모장이 보인다. 영실의 일기장인듯하다.

9월 9일. 오늘 일반 병실로 옮겼다. 저녁부터는 금식도 끝이다. 비록 미음이지만... 너무 좋다.......

9월 7일. 다행히 위험한 고비는 넘겼단다. 아! 정말 애간장이 녹는다는 뜻을 알 것 같다......

9월 3일. 하나님 부처님! 아무나 제발... 우리 남편을 살려주세요. 제 욕심 때문에 이 사람이 벌을 받는 거라면 저를 벌해주세요. 제발......

  숙현은 냉소를 지으며 노트북을 닫으려다 몇 건을 더 훑어보았다.

2월 11일. 이 언니가 또 전화했다. 정말 끈질기다. 무슨 미저리도 아니고.......

2월 23일. 이 남자 아직도 알맹이는 한국에 있다. 난 속없는 이 사람의 빈 껍데기만 붙잡고 산다.

3월 15일. 그때 한국에서 오지 말았어야 했다. 시간 좀 갖자고 했었는데... 어떡하면 양숙현이란 여자를 신영호의 인생에서 빼 버릴 수 있을까.

4월 29일. 전화가 또 왔다. 무음이라 그이가 못 들었다. 일부러 통화음을 누르고 큰소리로 그이에게 애교를 부렸다. 속 모르는 그이가 웃는다. 숙현 언니 들었어? 우리 이렇게 잘살아. 이젠 제발 좀 나와 내 남편 사이에서 사라져 줘. 당신이 내게 소개해준 내 남자잖아. 당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날 이용하려 그랬니?

  숙현은 숨이 턱 막혀와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무언가로 머리를 세차게 얻어맞은 듯 정신이 아득하다. 때마침 잠에서 깬 신교수의 신음소리에 화들짝 정신이 들어 얼른 그에게로 다가갔다. 실눈을 뜬 신교수가 무슨 말인지 하는 것 같았다.

  "숙...현...아..."

  숙현이 상체를 기울여 신교수의 얼굴에 귀를 갖다 대려는데 병실 문이 열리고 영실이 재빠르게 뛰어와 숙현을 밀어낸다.

  "교수님! 일어났어요? 나 여기 있어요. 나 영실이..."

  뒤이어 들어온 장 교수와 김 교수도 잠에서 깬 신 교수에게 다가갔다. 숙현이 병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지혜가 팔짱을 끼며 따라 나온다.

  "지혜야! 아빠 만나봐."

  "엄마는?"

  "엄만 여태 아빠랑 있었잖아."

  숙현은 지혜를 병실로 들여보내고 복도 끝 창가로 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본 하늘이나 태국에서 보는 하늘이나 다 높고 푸르렀다. 장 교수 일행을 배웅하고 세 사람은 병원 휴게실에서 캔커피를 한 잔씩 하며 어색함을 달래고 있었다.

  "지혜야! 아빠한테 가봐. 엄마 이모랑 얘기 좀 하고갈께."

  지혜를 보내고 숙현과 영실이 마주앉았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영실이 먼저 입을연다.

  "요즘 건강은 괜찮아 언니?"

  "응 많이 좋아졌어"

  "다행이네! 다 필요 없어. 우리 나이엔 건강이 최고야."

  다시 침묵이 흐른다. 자리가 불편한 듯 일어서려는 영실을 숙현이 붙잡았다.

  "내가 여기 온 건... 정말 지혜 아빠와 끝났기 때문이야. 미련이 있거나 했음 못 왔어."

  "......."

  "어쩌면 운명이란 거 진짜 정해져 있는 거 같아. 애당초부터 너는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살다 이렇게 가거라..."

  "......"

  "지혜 아빠와 난 5년 전 내가 너를 좋은 친구라고 지혜 아빠에게 소개 시키던 때 그때까지 였나봐. 그걸 너무 늦게 알았어. 이미 끝난 인연을 붙들고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지, 뭐."

  "왜 그런 생각을 하게됐어? 언니 여전히 형부 좋아하잖아."

  "좋아하지 코흘리개때부터 함께 한 시간이 얼만데...그놈의 질긴 인연 때문에... 호호. 신영호 참 복도 많아. 두 여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으니." 훨씬 편안해진 모습으로 영실이 웃는다.

  "너 그거 알아? 그 남자 발가락이 오른쪽 왼쪽 다르다? 왼쪽 네 번째 발가락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완전 휘었어."

  "정말? 몰랐어, 언니!"

  "허벅지 반점은 어떻고~ 그거 허벅지여서 다행이지. 호호호."

  "맞아요. 언니! 막 털까지 한 개 길게 나잖아. 뽑아주려면 막 아프다고 질색해. 복 털이라나~"

  "얘! 지금도 그러니? 어휴! 그 엄살이랑 허세는 여전하구나."

  싸늘했던 분위기가 마치 그 옛날 둘 사이에 신교수가 연관되기 전의 좋았던 모습으로 돌아간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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